2023. 3. 2. 13:32ㆍ업계의 뒷이야기
AMD 라데온 RX 7900 XT, 7900 XTX는 라데온의 현 세대 하이엔드급 그래픽카드다. 글로벌 권장 소비자가격은 7900 XT $899, 7900 XTX는 $999. 그런데 엔비디아 지포스 RTX 40 시리즈에게 상품성이 밀리면서 판매량이 거의 안 나오는 상태다.
최근에 중국발 PC/IT 매체와 커뮤니티를 통해 중국에서도 가격을 인하했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 마침 잘됐다 싶어서 이 글을 쓴다. 원글 출처는 중화권 커뮤니티인 mydrivers와 IThome다.
7900 XT 중국에서 출시가 7599위안 → 6599위안으로 할인
그나마 7900 XTX는 라데온 중에서 1황이라는 상징성과 RTX 4080에 맞먹는 깡성능이 있기 때문에 라데온 매니아들이 가끔 구매하는 경우가 있는데, 동생인 7900 XT는 성능과 가격이 모두 애매해서 상품성이 폐급이었기 때문에 출시 가격에 구매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아마 세상 사람들 중에서 99.999% 정도는 차라리 100달러를 더 주고 7900 XTX를 구매하거나, 아니면 4070 Ti를 구매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00 차이가 아니라 거의 $300~400 차이가 난다)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였는지, 몇 달 사이에 7900 XT 가격이 1,000위안이나 떨어졌다. 1,000위안은 2023년 2월 27일 환율 기준으로는 약 19만 원이다. 라데온 7900 XT는 현재 타오바오, 징동닷컴 등에서 비레퍼런스 제품들도 평균 6,499 위안에 팔리는 중이며, 일부 제품은 쿠폰 행사까지 더해서 5,500위안까지도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5,500 위안 = 약 105만 원)
그런데, 우리나라 최저가는 왜 안 움직일까?
요즘 라데온 그래픽카드의 가격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견적 추천 컨텐츠를 만들때 라데온 그래픽카드를 끼워 보고 싶어도, 가격이 의외로 착하지 않아서 써먹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때 RX 6700 XT는 40만 원대 초중반의 가격에 좋은 성능을 제공했기 때문에 적극 추천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사라졌고, 남은 것은 코인 불장의 유산인 RX 6000 시리즈 악성 재고와 주제 파악 못하는 가격의 RX 7000 시리즈 뿐이다. 업계에서는 라데온 그래픽카드도 좀 언급해 달라고 하지만, 언급하면 나와 내가 소속된 회사가 욕을 먹는데 어찌 언급한단 말인가?
아무튼 중국 시장이나 미국 시장에서의 유통 가격을 아는지 모르는지. 국내에서는 가격이 늘 비싸다. 대체 왜 이럴까?
인정하긴 싫지만, 환율이 문제라는 건 인정해야겠다
맞다. 환율은 문제다. 예를 들어 2월 초에는 원달러 환율이 1,230원이었고, 원-위안화 환율은 182원이었다. 그런데 딱 한 달만에 달러는 8%, 위안화는 4.5% 가량 올랐다. 2023년 2월 28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1,322원이고. 원-위안화 환율은 190원이다.
내 얄팍한 경제 상식으로 '미국이 금리를 높이고 달러 회수 정책을 하니까 달러가 귀해져서 달러 가치가 오른다' 정도까진 어찌 저찌 알겠다. 지금 달러 가치가 높아지는 건 세계적인 현상이니까 어쩔 수 없이 두드려 맞아야 하는 시즌! 뭐 이런 거겠지. 다만 달러가 아닌 다른 나라들 예를 들면 중국, 대만, 유로 같은 곳들과 비교해도 우리나라 원화가 약세인 것은 아쉽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는 미국, 중국, 대만에서 수입 해 오는 PC 부품들도 가격을 내리기 어렵다. 예를 들면 2월 초처럼 환율이 착할 때 들어온 제품은 가격을 내릴 여력이 그만큼 더 있지만, 작년 11월이나, 지금처럼 환율이 다시 치솟는 상황에서 수입해온 제품은 가격을 내리기 어렵다. 라데온 7900 시리즈 그래픽카드, 지포스 RTX 40 시리즈 그래픽카드, 그리고 (신형)메인보드 처럼 요즘 가격이 비싸서 욕 먹고 있는 부품들의 공통점은 다들 작년 11월 전후로 환율이 한참 비쌀 때 제품을 출시했고, 그때 한국에 수입해온 물량들이 아직 안 팔리고 있다는 거다.
하지만 환율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특히 7900 XTX 하급 모델들은 더욱 그렇다
얘네는 대체 왜 이렇게 비싼건데?
7900 XT는 우리나라에서 정말 드럽게 안 팔린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작년 연말에 제품 출시할 때 가져온 몇 개가 아직도 안 팔려서 수입사 창고에서 썩어가는 정도다. 그래서 오히려 7900 XT는 국내 가격이 상대적으로 봐줄만 했다. 워낙 안 팔리니까 마진이고 뭐고 다 줄여서 털고 싶은 것이다. 물론 그 가격도 손해보고 팔 수는 없으니까 최소한의 마진은 붙이긴 했겠지만. 아무튼 해외 시세랑 비교해서 큰 차이 안 나는 정도였다. 아마 이대로 쭉 간다면 5월 빅스마일데이 라던지, 아니면 11번가의 십일절, 아니면 요즘 핫딜을 종종 띠우는 티몬이라던지. 이런 곳에서 특가로 해외보다 더 저렴하게 나올 가능성도 있겠다.
문제는 7900 XTX다. 얘는 레퍼런스나 하급 비레퍼 모델들이 해외에서 평상시 $999~1049이고, 할인하면 $949 까지도 간다. 지금 환율로 계산하면 대략 125 ~ 140만 원 사이가 된다. 그런데 7900 XTX는 국내에서 레퍼런스 재고나 비레퍼 하급도 150~170만 원 사이에서 호가가 형성되고 있다. 이 25~30만 원의 격차는 뭘까. 해외에서는 $100 차이 밖에 안 나는 7900XT와 비교해서도 말이 안 되는 가격이다. 왜 이렇게 비싸게 파는 건데?
1. 환율이 1430원 일때 수입해온 제품이라 가격을 내리고 싶어도 못 내린다
2. 수입할 때 부가세를 포함하면 대충 그 정도 가격이다
3. 팔리건 말건 알 바냐? 어차피 몇 개 안 가져왔기 때문에 살놈은 사겠지
4. 155~170만 원이라도 RTX 4080 보다는 저렴하니까 살놈은 사겠지
1번은 그 당시 환율 1,430원으로 계산해 보면 999달러는 약 143만 원이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 초기 가격을 약 170만 원으로 출시했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2번은 나중에 별도의 글에서 한번 다루겠지만 우리나라에서 보통 PC 부품 가격이 글로벌 MSRP(권장소비자가격) + 수입 부가세 10%를 더한 것을 마치 정가인 것처럼 생각하고. 해외 MSRP보다 10% 비싼 가격이 정당한 것처럼 합리화를 하는데, 그건 잘 못된 것이다.
어떤 나라에서 팔더라도 MSRP를 그 나라 통화로 환산한 가격에 비슷하게 팔 수 있도록, 제조사가 수입사에게 넘기는 수입 원가는 그보다 더 저렴하게 들어가기 마련이다. 나라마다 관세나 부가세가 다르고, 브랜드마다 정책이 조금씩 다르니 일률적으로 딱 못박아서 말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튼 최소한의 마진을 확보해 주지 않으면 수입사나 총판이 다 떨어져 나가서 물건을 못 팔게 되니까 마진의 문제는 그들이 도매(수입)의 영역에서 어련히 알아서 해결할 일이고, 우리 소비자들이 거기까지 신경써 줄 이유가 전혀 없다. 소비자들은 해외 권장소비자 가격 대비 우리나라 가격이 비싸면 비판하고 제품을 안 사주면 되는 거다.
3번과 4번은 수입사나 총판의 마케팅의 영역인데. 말이 좀 거칠긴 해도 이치에 맞다. 어차피 라데온은 코인 불장 같은 특수한 상황이거나 라데온이 지포스를 완전히 성능으로 바르는 황금세대가 아니면 국내에서 몇 개 안 팔리고(팩트), 그렇기 때문에 수입사들이 애초에 라데온 그래픽카드는 될 수 있으면 수입을 최소 수량으로만 하려고 하고(팩트), 가격이 아주 저렴하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면 일부 팬들만 구매하는 물건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싸게 팔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어차피 살 사람은 사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많이 싸면 지금보다는 훨씬 잘 팔릴 것이기 때문에, 브랜드나 수입사들이 전후 관계를 잘 못 설정했다고 태클 걸고 싶긴 하지만. 그들이 지난 20년 동안 "한국 시장에서는 라데온보다 지포스가 잘 먹힌다"고 몸소 체험한 데이터를 경영에 반영하는 것이니까. 감놔라 배놔라 할 수는 없다. 다만 가격이 비싸니까. 소비자가 머리 깨져가면서 그걸 사 줄 필요도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안 사주면 된다.
위에서 언급은 안 했지만 유통 과정이 아니라 제조의 문제일 수도 있다. AMD가 라데온 7900 시리즈의 실패를 사실상 인정하고 GPU 칩 제조 자체를 안 하는 것이다. 뇌피셜 소설이긴 하지만 아주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닌 것이, 해외 유통망에서 라데온 7900 시리즈 재고가 별로 없다는 소식도 있다.
당분간 국내 시장에서 라데온 7900 시리즈의 가격이 팍 내려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7900 XT는 원래 해외 대비 가격이 별로 안 비쌌고 (그냥 7900 XT 자체가 가성비와 상품성이 안 좋다), 7900 XTX는 환율이 제일 비쌀때 수입해온 것들을 수입사나 총판이 손해보면서 팔 수 없기 때문에 일단 지금 가격으로 버틸 가능성이 높다. RTX 4080과 동급이라며? 가격도 비슷해야지. 그런데 라데온이니까 약간 싸게.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책정한 가격이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7900 XTX의 가격이 내려가려면 AMD가 이들 GPU를 탑재한 제품의 출고가를 공식적으로 인하해서 초기에 물건을 수입한 판매자들이 어떤 식으로든 보상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겨야 한다. 소비자들은 가격이 떨어질 때까지 안 사고 기다리거나, 아니면 지포스를 사거나, 아니면 (라데온 광팬이라면) 가격이 한참 저렴해진 6800XT~6950XT 중고를 써야 한다.
2023년 3월 2일. Climber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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